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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의 진실의 손을 떠난 진실
    카테고리 없음 2022. 1. 25. 02:10

     

    (The Last Duel)★★★☆외계인: 커버넌트와 올 더 머니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라스트 듀엘: 최후의 결투입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11월에 공개될 예정인 또 다른 신작 하우스 오브 구찌와 꼭 깨끗한 틈을 타 공개됐겠지만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같은 존재가 된 작품입니다. 원래 마케팅 규모에서 버린 아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지금부터 정말 유감입니다.

    부조리한 권력과 야만의 시대, 14세기 프랑스. 유서 깊은 칼루지가의 아내 마르그리트는 남편의 장이 집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장의 친구 잭에게 씻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합니다. 강요된 침묵에도 불구하고 마르그리트는 잭의 죄를 고발하고, 격분한 장은 가문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 재판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한 번의 결투는 이렇게 막을 올립니다.

    여러 장르와 색채가 뒤섞인 작품입니다. 마지막 결투라는 부제 겸 원제를 따져보면 액션이나 최소한 드라마의 향기가 더 짙겠지만 의외로 마지막 듀엘이 갖는 재미의 가장 큰 비중은 법정물이 차지해요.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벌어지는 진술과 진술의 충돌, 그리고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이 영화의 오락성을 담당하고 있죠.

    이거는 굉장히 실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영화는 모두 3장의 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장 드 칼루지의 진실,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잭 르 글리의 진실, 마지막에 조디 코머가 연기하는 마르그리트 드 칼루지의 진실이 그 뒤를 잇습니다. 관객이 최종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사건 전체는 각자의 눈높이에서 재현된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방식입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같은 사건을 다르게 재현해요. 자기공적을기리고남의잘못은분명한인간의주관을적극반영합니다. 칼루지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루구리의 목숨을 구했던 순간을 기억하지만, 루구리의 시선으로 재현된 똑같은 장면에는 사뭇 다른 사실이 숨어있어요. 싸운 뒤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민 테인베의 대사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먼저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영화의 도착점이 아닌 과정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집중력을 유지시키려는 수단일 뿐이에요. 왜곡되고 각색되어도 진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극중 진실은 당연히 누려야 할 의의를 갖지 못합니다. 정말 피해를 입고 그 피해에 대한 사과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뒷전으로 밀린 채 세상은 전혀 상관없지만 동력으로 그를 희생시키게 됩니다.

    영화는 수백년 전 중세를 배경으로 했지만, 진실한 오용이라는 주제의식은 현대에도 얼마든지 적용되죠. 신념과 이해관계가 얽히는 순간 필연적으로 파생될 수밖에 없는 결과입니다. 혼잣말이 되어버린 진실에 대해서는 슬프게도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습니다 칼루지와 루구리 어느 쪽도 아닌 마르그리트의 헤어스타일만 빼닮은 아이를 쓸쓸하게 비춰주는 화면이 그를 간접적으로 나타냅니다.

    문화계의 시류에 충실하면서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뚜렷한 영화입니다. 섣불리 목소리를 내면 그 내용은 물론 방식에도 생각지 못한 지적이 덧붙여질 수 있지만 특히 그 시점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더 현명한 시선을 택했습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헛수고>를 보고 조지 밀러 감독의 현역 감각에 감탄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러닝타임이 무려 1 52분이나 되는데도 첫 번째 편집본에서 1시간을 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 니콜이나 르 글리의 시종 아담 등 할말이 있을 법한, 그리고 그 내용이 상당히 중요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투리 생각을 하는 조연들이 가끔 있는 겁니다. 같은이야기를세번반복하는동안굳이보여줄필요가없었던상황도있었으니까안타까운구성이겠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네 번째 캐릭터 4장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마르그리트의 3장이 진실임을 공표하지만, 거기에는 3장에만 등장하거나 3장에만 빠져 있기도 해 관객 입장에선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언급한 니콜이나 아담, 혹은 벤 아플렉의 피에르가 네 장의 주인이 됐다면 깜찍한 반전이 됐을 텐데.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적 감각을 가진 고전소설을 탐독하는 기분입니다. 맷 데이먼, 애덤 드라이버, 벤 애플렉, 조디 코머 등 화려한 배우들의 면면과 연기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후반부에는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으로 여실히 단련된 액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입장벽이 없는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다뤄지는 영화는 아닌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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